레프 비고츠키(Lev Semenovich Vygotsky, Лев Семенович Выготский, 1896년 11월 17일 ~ 1934년 6월 11일)는 구소련의 인지심리학자로, 벨라루스 출신입니다. 십 년 정도의 짧은 연구 활동 기간 동안 발달 심리학 분야를 시작으로 되게 넓은 분야에서 엄청 많은 실험적이고 이론적인 연구를 하다가 삼십칠 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레프 비고츠키는 심리학계의 모차르트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1918년에 대학교를 졸업한 레프 비고츠키는 호멜로 돌아가 교직에 종사하며 학문연구를 이어나갔습니다. 1919년에는 호멜 지역에 볼셰비키가 진입하면서 레프 비고츠키는 사회 활동가로서 알려지게 됩니다. 레프 비고츠키는 1920년에 볼셰비키당에 입당하였습니다. 1919년에서 1923년까지 레프 비고츠키는 볼셰비키가 이끄는 교육 변혁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M.G. 야로셰프스키의 말에 따르면, 발달심리학 및 인지심리학에 있어서 개척자로 볼 수 있는 레프 비고츠키의 연구는 1934년부터 소련의 심리학자인 보리스 아나니예프의 저항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1924년에는 모스크바로 되돌아가서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1934년에 레프 비고츠키는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1896년에 벨라루스 오르샤의 풍요로운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의 호멜이란 곳에서 자랐습니다. 모스크바 대학교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나중에 편입을 하여 법학을 공부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학교 시절에는 철학, 사회과학, 심리학, 언어학, 문학, 미술 등, 방대한 영역의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습득하였는데, 이것은 나중에 레프 비고츠키의 심리학 연구의 기초가 됩니다. 재학 중에는 러시아 혁명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소수의 학자들은 1936년 이후 비고츠키의 몇몇 저서에 대하여 금서 조치를 근거로 하여서 레프 비고츠키가 스탈린 시기에 어마어마한 탄압을 받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레프 비고츠키의 몇몇 저서에 대하여 금서 조치의 상황을 보면 1936년 7월 4일 전 연방 공산당이 결의한 아동학 일소 노선과 직접적으로 관련한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레프 비고츠키를 포함하여 전체 아동학자의 저서가 금서 조치 된 것입니다. 야로셰프스키와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저항들이 레프 비고츠키 학설에 대하여 스탈린의 집요한 공격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전 연방 공산당이 아동학 일소를 결의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은 아동학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에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당시에 대부분의 아동학 연구가 성인기의 심리적 자질을 아동기의 심리적 자질로, 무비판적으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능의 발견이 아동기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교육학적으로 다소 편견이 작용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톤 야스나츠키는 비고츠키 연구에 대하여 레프 비고츠키의 사후인 1930년대 후반에도 지속적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주요 심리학 연구로 거론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레프 비고츠키의 학설은 스탈린 집권기에도 금지된 바 없습니다. 야스나츠키의 말에 따르면, 1930년대부터 여러 학파 간의 서로에 대한 비판은 소비에트 연방 내에서 매우 흔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레프 비고츠키는 공산주의 미래의 초인과학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심리학을 성립해야 함을 주장하였습니다. 레프 비고츠키가 일생에 이루어낸 이론의 전반은 발달심리학에 머물러 있었으나, 인간 심리 일반에 대한 고찰이 선차적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라는 점에서 심리학적인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레프 비고츠키의 아동학 연구에는 그러한 무비판적인 환원주의가 표현되지는 않았으나, 아동학 일소에 대한 결의 집행은 각개개인의 학자의 학설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이루어졌습니다. 현대에는 레프 비고츠키의 이론을 종종 스키마(Schemas)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1936년 7월부터 레프 비고츠키의 아동학 관련 연구는 소비에트 심리학계에서 다시 거론되지는 못하였지만, 레프 비고츠키의 심리학적 방법론과 인식의 발달 과정 그리고 역사심리학이라는 기초는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거론되었습니다. 비록 레프 비고츠키 학파는 1941년에 발발한 전쟁의 여파로 인하여 내부 학제 교류가 끊어지면서 해산의 길을 걸었지만, 후학의 지속적 노력으로 인하여 1950년 후반부터 다시 한번 기반을 잡게 되었습니다. 레프 비고츠키는 우리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심리의 기원을 찾아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의견으로부터 발생한 이론이 아동의 행동, 언어 습득, 개념 개발, 문화 전달 형태에 관한 연구 이론입니다. 이후 레프 비고츠키 학파는 공산권 심리학에서 파블로프 학파와 어깨를 겨루게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정신현상학파, 소비에트의 정신분석학파 등이 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및 기타 공산권의 학교교육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서구 사회의 교육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소련의 붕괴 후에 레프 비고츠키의 논문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는데, 특히나 첨단 뇌과학과 결합한 인지주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동에 대한 언급으로 일관됨에도 불구하고 사회제도 및 그 문화를 포괄할 수 있는 거시적이면서도 반대로는 세밀한 관찰을 통하여 논리적인 해석에서 이 사회와 가정이 아동의 발달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취약한 환경과 준비가 덜된 상황에 노출시킬 수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아동에 대한 심리학적인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고 있다는 점에서 레프 비고츠키의 업적은 상당히 가치 있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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