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릭 나이서는 1928년 12월 8일 독일의 킬이란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율릭 나이서(Ulric Neisser, 1928년 12월 8일 – 2012년 2월 17일)는 독일계 미국인 심리학자이면서 미국의 국립과학원의 회원입니다. 율릭 나이서는 "인지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율릭 나이서는 지각과 기억에 대하여 연구하고 출간했습니다. 율릭 나이서는 사람들의 정신 과정을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율릭 나이서의 아버지인 한스 나이서는 유명한 유대인 경제학자였습니다. 1923년 한스 나이서는 독일에서 일어났던 여성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사회학 학위를 취득한 나이저의 어머니 샬롯과 결혼했습니다. 인지와 현실의 중요한 주제는 생태학적으로 유효한 자연환경에서 발생하는 지각에 대해 실험한 율릭 나이서의 옹호입니다. 율릭 나이서는 기억은 대부분 재구성되며 순간의 스냅숏으로 볼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율릭 나이서는 챌린저 폭발에 대하여 사람들의 기억에 대해 널리 알려진 연구 중 하나에서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이서는 기억의 핵심 개념화 중 하나인 기억이 과거의 수동적 재생산이 아니라 구성의 능동적 과정을 나타낸다는 견해의 초기 멤버였습니다. 이 개념은 리처드 닉슨의 전 고문인 John Dean의 Watergate 증언에 대한 나이서의 분석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딘이 실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의 조합을 하나의 기억으로 합하였다는 것입니다. 나이서가 언급했듯이 "기억에 남는 일들은 실제로 반복되는 하나의 사건을 나타낸다." 나이서는 이런 기억 오류가 일반적이며 구성 과정으로 기억의 특성을 반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이서는 챌린저 우주 왕복선 폭발에 대하여 개인의 기억 연구를 돌입하여 기억 개념을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1986년 1월 챌린저 폭발 직후 나이서는 대학교 신입생에게 설문지를 나누어 주며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몇 시에 챌린저 폭발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정보 등을 적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율릭 나이서의 아버지는 다가오는 히틀러의 군국주의를 예상하고 1933년 독일을 떠나서 영국으로 옮겨갔고 몇 달 후 나머지 가족들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함부르크 원양 정기선을 타고 미국으로 항해하였으며 1933년 9월 15일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하버드에 다니면서 나이서는 MIT 링컨 연구소의 어린 컴퓨터 과학자인 올리버 셀프리지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셀프리지는 기계 지능의 초기 옹호자였습니다. 나이서는 그의 연구실에서 시간제 컨설턴트로 일했습니다. 나이서는 사고와 관련된 연구와 관련된 여러 보조금 등을 받았습니다. 나이서는 정확성에 대하여 학생들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기억에 아주 큰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냅니다. 나이서의 발견은 플래시 전구 메모리에 오류가 거의 없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1967년에 율릭 나이서는 인지심리학을 출판하였는데 훗날 율릭 나이서는 이 책이 행동주의적 심리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인지심리학은 심리학 분야에서 율릭 나이서의 명성과 인지도를 가져온 분야입니다. 인지심리학은 특정한 룰에 얽매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율릭 나이서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아이디어 중 일부가 포함된 것은 인지와 현실이었습니다. 1991년 봄에 나이서는 참가자들에게 연락을 하여 지진에 대하여 현재 상태와 이전 상태를 비교했습니다. 그는 애틀랜타 참가자와 비교하였을 때 캘리포니아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지진에 대하여 더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것을 발견해 낼 수 있었습니다. 1976년 나이서는 인지와 현실을 편찬하여 인지 심리학 분야에 대한 3가지 일반적인 비판을 했습니다. 첫째, 인지 심리학자들이 행동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전문화된 정보 처리 모델을 과하게 강조하는 데 불만을 표했습니다. 둘째, 인지 심리학이 인간 행동의 일상적인 측면과 기능을 다루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실패의 원인을 1970년대 중반까지인지 심리학의 인공 실험실 작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인지 심리학이 실험에 의해 테스트 된 행동 이론과 실제 행동 사이에 심각한 단절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유명 지각 심리학자 JJ 깁슨과 그의 아내인 발달 심리학의 그랜드 담인 Eleanor Gibson이 제안했던 직접 지각 및 정보 수집 이론에 대하여 큰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율릭 나이서는 인간지능에 대하여 현재 연구를 요약하고 ‘플린 효과’에 대하여 최초의 주요 학술 논문을 저술했습니다. 2002년 출판되었던 일반 심리학 리뷰의 설문조사에서 율릭 나이서는 이십 세기에 가장 많이 인용된 심리학자 삼십이위에 올랐습니다. 나이서는 지진의 정서적 영향과 개별 기억에 대하여 데이터를 모으기 위하여 설문조사를 이용하여 감정과 기억 사이의 가능한 연관성을 연구했습니다. 나이서는 1950년 심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40년 후반에 하버드 대학교에 다녔습니다. 이후 그는 스와스모어 칼리지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나이서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볼프강 콜러가 교수로 있었던 스와스모어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나이서는 어린 시절 야구팀에서 꼴찌로 뽑히는 등의 기억으로 인하여 항상 약자에게 동정적이었고, 이것이 그를 당시에 게슈탈트 심리학에 이끌리게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연구에는 1989년 캘리포니아 지진에 대한 개인의 기억이 포함되었습니다. 나이서는 지진 근처에 있는 캘리포니아와 지진에서 멀리 떨어진 애틀랜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실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과 단순히 그것에 대하여 듣기만 한 사람들의 기억의 차이를 연구했습니다. 나이서는 인지심리학이 인간 행동은 지각하는 유기체가 직접 이용할 수 있는 정보의 분석으로 시작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Gibsons의 주장을 주의 있게 관찰하지 않으면 그 잠재력을 이루어낼 수 있는 희망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였습니다. 나이서는 기억이 구성되는 방식을 정확히 하기 위해 플래시 전구 기억에 대하여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나이서의 경력에서 또 다른 이정표는 John Dean의 기억에 대한 1981년 출판물과 함께 발생했습니다. 이 견해는 목격자 증언과 같은 것들의 신뢰성에 대하여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딘의 직접적인 증언에서 얻은 기억을 딘이 참여한 녹음된 대화와 비교합니다. 나이서는 Dean의 기억이 녹음된 대화와 비교할 때 대체로 부정확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삼 년 후 나이서는 기억의 정확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같은 설문조사를 사용하여 지금 상급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플래시 전구 기억의 개념은 브라운과 Kulik이 1977년 존 에프 케네디의 암살에 대한 기억에 관한 논문에서 처음 설명했습니다. 높은 감정적 각성을 발생시키는 매우 놀랍고 의미심장한 사건은 사건 학습 당시 진행 중인 시간, 장소 및 기타 상황에 대한 리얼하고 명확한 기억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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